입찰자들에게 ‘법정지상권’이라는 단어는 ‘유치권’ 만큼이나 살 떨리는 단어가 될 수 있다. 치열한 분석과 현장 답사를 거쳐 낙찰받은 땅을 법정지상권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면 이는 ‘30년 후에나 나타날 재개발 호재에 투자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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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지상권을 접하는 빈도가 많을수록 입찰자는 하나의 착각에 빠지기 쉽다. ‘법정지상권이 과연 어느 쪽에 더 유리할까’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법정지상권을 상대적 유불리라는 측면에서 판단하는 프레임 자체가 하나의 큰 착각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판례는 법정지상권 성립요건과 관점 정립에 있어 상당히 명쾌한 시각을 독자 여러분께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바, 주의 깊게 읽어주시길 당부드린다.
자금이 필요했던 A씨는 2000년 11월 15일, 자신의 소유이던 이 사건 토지와 그 지상 주택을 금융기관(이하 은행)에 공동담보로 제공하고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이후 5년이 지난 상태에서 공동담보로 제공됐던 토지와 주택 중 주택이 '멸실'을 이유로 2005년 12월 29일 멸실등기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택은 멸실되지 않고 그대로 남은 상태였다.
이후 은행은 채권 회수를 위해 위 근저당권에 기해 이 사건 토지에 대한 임의경매를 신청했고 그 결과 B씨가 이를 낙찰받았다. B씨는 이 토지를 다시 원고인 C씨에게 매도했다.
그런데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던 도중 A씨는 협의 이혼에 도달하게 됐다. A씨의 배우자 D씨(피고)는 이 사건 주택을 소유하는 것으로 재산분할협의를 마친 뒤 주택을 점유해오고 있었다.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한 C씨는 D씨를 상대로 건물철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고 원심은 C씨의 손을 들어줬다. D씨는 재판에서 법정지상권을 주장했으나 원심은 이를 배척했다.
원심 판사진은 “채권자 은행은 토지와 주택을 공동담보로 한 근저당권을 설정받은 것이나 멸실등기로 인해 토지 근저당권만 실행하게 됐다”며 “이 경우처럼 경매로 토지 소유자가 달라진다는 근거로 법정지상권이 성립한다면 채권자 은행 측의 이 사건 주택의 교환가치에 해당하는 손해가 발생하므로 주택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법정지상권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은 이에 대해 다른 판결을 내렸다.
상고심 재판부는 “이 사건처럼 공동담보로 설정된 건물이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달리 멸실의 기재로 인핸 등기부가 폐쇄된 경우, 저당권자로서는 멸실 등으로 인하여 폐쇄된 등기기록을 부활하는 절차 등을 거쳐 건물에 대한 저당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 이상 저당권자가 이 사건 주택의 교환가치에 대하여 이를 담보로 취득할 수 없게 되는 불측의 손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단지 건물에 대한 등기부가 폐쇄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건물이 멸실된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는 만큼 경매로 토지와 건물 소유자가 달라졌다면 그 건물을 위한 법정지상권은 성립한다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오늘의 판례에서 유심히 볼 것은 ▲법정지상권의 성립에 대한 법원의 시각이다. 사실 일반 대중이 법정지상권을 대하는 대부분의 시각은 토지 소유자와 건물 소유자의 다툼이라는 대립구도지만 법원의 판결은 이와는 기준이 다르고 그 기준은 바로 ‘공익’이다.
법정지상권의 의의는 그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게 될 때의 사회적 손실을 방지하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하면 최대한 건물을 허물지 않는 선에서 토지와 건물 소유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유심히 보면 건물도 허물지 않고 채권자 측의 불측손해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멸실등기된 근저당권의 부활’이라는 부분이 그것인데, 법원이 이처럼 판결한 이유는 법정지상권의 의의가 원고와 피고의 유불리에 대해 판결해주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건물 철거를 최대한 방지함으로서 사회적 이익을 지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의 법정지상권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고 경매사건에 접근할 때, 향후 사건 전개의 방향이 선명해질 것은 물론 리스크 감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